1970년대 대한민국 가요계를 풍미했던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은 신장암으로 투병하던 중 향년 73세의 나이로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임종의 순간에는 남편인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을 비롯한 가족들이 마지막 길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8군 무대에서 세계를 누빈 K팝의 원조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 결성과 해외 활동
가수 옥희는 1953년 피란지 부산에서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모태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배화여중 3학년 시절 가수 현미와의 만남을 계기로 미8군쇼 오디션을 보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후 1968년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로 데뷔하여 홍콩, 중동,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지를 누비며 활발한 공연을 펼쳤습니다. 생전 고인은 방송을 통해 "우리가 세계를 누비던 K팝의 원조였다"라며 당시의 자부심을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솔로 전향과 1970년대 히트곡 행진
귀국 후 1974년 발표한 솔로 데뷔곡 '나는 몰라요'는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곡가 김희갑과 작사가 김중순이 호흡을 맞춘 이 곡으로 옥희는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여가수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이어 '눈으로만 말해요'(1975), '이웃사촌'(1977) 등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를 기록하며 1970년대 대중음악의 중심에 섰습니다.
홍수환과의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와 재결합
세간을 들썩이게 한 만남과 결별
고인은 1970년대 후반 당대 최고의 복싱 스타였던 세계 챔피언 홍수환과의 열애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두 사람은 1978년 딸을 출산하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의 아픔을 겪으며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대중의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두 사람의 이별은 당대 큰 이슈였습니다.
16년 만의 재결합과 아름다운 동행
두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결별 16년 만인 1995년 극적인 재결합을 발표했습니다.
재결합 이후 이들은 2000년에 부부 공동 앨범을 발매하고 다양한 자선음악회 무대에 함께 오르는 등 서로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투병 생활 중에도 홍수환은 고인의 곁을 지키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으로서의 의리와 사랑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음악 열정
신장암 투병과 마지막 음반 활동
고인은 지난해 신장암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습니다.
2024년 발표한 '고마운 사랑'과 음악 동인 예우회의 음반에 수록된 '인생 열차'는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음악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암 세포가 퍼져가는 상황에서도 음악을 향한 그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불태운 마지막 예술혼
투병 중이던 올해 3월에도 고인은 KBS '가요무대'에 출연하여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몸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도 무대에 올라 열창을 선보였던 모습은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음악가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열정을 불태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가수 옥희의 구체적인 사인과 별세 장소는 어디인가요?
A1. 고인은 지난해 진단받은 신장암으로 투병해 왔으며, 암이 악화되어 경기도 수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일 오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Q2. 고인과 남편 홍수환의 재결합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A2. 두 사람은 1978년 딸을 얻은 후 한 차례 결별했으나, 16년이 지난 1995년에 극적으로 재결합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부부 공동 앨범을 발매하는 등 별세 전까지 깊은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Q3. 가수 옥희가 남긴 대표곡과 마지막 노래는 무엇인가요?
A3. 대표곡으로는 MBC 10대 가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나는 몰라요'와 '이웃사촌'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은 2024년에 발표한 곡 '고마운 사랑'과 '인생 열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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